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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 인물 탐구 그는 누구인가?

by 어느날내게다가온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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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 인물 탐구 그리고 재산은?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정보 알아보기

 

흔히들 사우디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전제군주제 국가입니다. 수도는 리야드입니다.

과거에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었습니다만. 현재은 베네수엘라, 미국, 러시아 등에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OPEC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비록 최고 산유국의 지위에서 내려 왔려와 채굴량에서 아주 조금 밀릴 뿐 사우디 석유 채굴 원가는 다른 산유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사우디의 국토면적은 약 215km². 세계에서 12번째로 넓은 국가이자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넓은 국가입니다

아랍 연맹에서는 알제리(238km²)에 이어 두 번째로 넓고 아시아에서도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에

이어 4번째로 넓지만 온통 사막이라 사람이 살 만한 땅은 좁은 지역에 자리 하고 있습니다.

그대신 사람이 살지 못하는 사막에서 나오는 석유 덕에 다른 부유한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랍 최고의 부국이자 지역에 맹주로 성장했습니다. 경제력의 경우 2021년 기준 GDP 19, 외환보유고 9위 등

아랍권에선 영향력이 독보적이며 국제사회에서도 섣불리 무시할 수 없는 역량과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주 인구는 2022년 현재 기준 약 3600만 명으로 중동에서 사우디의 국력과 영토 면적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적다고

느껴질 정도 입니다.

 

빈살만

빈살만 그는 누구 인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이자 제7대 총리, 국방장관이며 왕실 직속 경제위원장,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구단주입니다

이렇게 나열한 것만 보아도 사우디에서 상당한 고위층으로 느껴지는데 직함이 주는 무게보다 더 그는 현재 사우디의

실질적인 통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언론에서는 이 사람을 빈 살만 왕세자라고 칭하는데, 빈 살만은 이름이 아니고 살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은 무함마드, 사실 왕세자 즉위 이전 국방장관 시절에는 '무함마드'라고 제대로 이름을 표기한 기사가 검색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이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에는 '빈살만'으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아마도 직전 왕세자 이름이

무함마드 빈 나예프였기에, 두 사람을 구분하려고 이렇게 한 듯보입니다.. 서구식 이름에서 앞부분이 본인 이름,

뒷부분이 성씨 역할을 하고 이 중에서 뒷부분 이름이 공식 석상에서 격식을 차릴 때 쓰는 이름에 우리가

익숙해진 탓에 흔히 저지르곤 하는 실수인 듯도 합니다 예컨대 오사마 빈 라덴도 흔히들 간단히 줄여 부를 땐 '

빈 라덴'으로 불리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우디는 왕족이 이끄는 군주제 국가입니다 사우디 왕위 계승 방법에 따르면 국왕이 형제나 다음 세대 왕자들

중에서 후계자 후보를 1~3명을 선정한 후에 왕실 각 집안 대표로 이루어진 '충성위원회가 후보 중 한 명을 선출합니다.

강제 조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형제 상속이 이뤄진 배경에는 초대 국왕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초대 국왕 알 사우드는 호족과의 정략결혼을 세력 확장에 도구로 썼습니다 그리고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국했습니다. 이렇게 결혼한 부인만 23, 아들은 무려 45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1953년 사망하기에 전에 왕위 계승자로 첫째 아들 사우드를 지목하고, 또 다른 아들 파이 잘을 다음 계승자로 임명했습니다. '형제의 난'을 우려해서였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 왕 알사우드의 뜻에 따라 그 이후에도 왕위 계승이 형제에서 형제로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사우디는 중동 관습인 일부다처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기에 왕가에는 왕자만 수백 명이 있는 매우 복잡한 권력구조로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형제간 사이라기보다 정적에 가까운 곳에서 빈살만은 모략과 음모로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일인자로 우뚝 선 권모술수의 화신 같은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이 항상 그렇듯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암살이나 납치 같은 무리수 두고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빈살만은 1985831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자와 그의 세 번째 부인 파다 빈트 팔라 알 히슬레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살만 왕자는 히슬레인 왕자비 사이에서 총 6명의 자식들을 있었는데 무함마드 빈 살만은 그중에서 장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살만 왕자가 하도 왕비와 첩실들이 많았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8번째 자식이며 7번째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빈살만은 킹 사우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사우디 정부를 돕는 민간 컨설턴트로 몇 년간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2009년에 당시 리야드 주지사이던 아버지의 특별 고문역으로 현실정치에 입문했습니다.

리야드 경쟁력위원회 위원장, 킹 압둘아지즈 연구보존 재단의 이사장 특별 고문 등 다양한 직위와 직책들을 꿰차면서

서서히 권력 중심부로 커리어를 이동시키는 일을 자연스레 이어 왔다고 합니다

 

2017114일에 빈살만 왕세자는 500여 명이 넘는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체포해

야드의 리츠-칼튼 호텔에 구금해버렸습니다. 사우디 은행은 2,000여 개가 넘어가는 계좌를 동결했으며 혹시나

개인용 비행기로 도망칠까 봐 공군까지 동원했다고 합니다. 왕자들 11명이 한 번에 줄줄이 잡혀 들어왔고4명에

달하는 장관들이 체포당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숙청 대상으로는 억만장자 사업가였던 알 왈리드 빈 탈랄, 압둘라

전 국왕의 아들인 무타이브 빈 압둘라 왕자, 투르키 빈 압둘라 왕자 등으로, 사우디에서도 한가닥한다는

인물들이 모두 구금당했고. 심지어 구금당한는지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은 인물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전 파흐드 국왕의

아들 압둘 아지즈 빈 파흐드 왕자가 군인들에게 저항하다 살해당했다는 루머가 있었고,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도

개인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격추당해 사망했다는 설까지도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37)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17일 방한했습니다 빈살만은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게임을 좋아하고 콘텐츠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평범한 30대 같은 순수해 보이는 미소가 눈에 띠지만 권좌를 지키기 위한 살벌한 정치 암투는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사우디의 미래 도시 사업인 네옴시티를 이끌어가고 있고 에너지·바이오·게임 등 미래 산업 분야 투자를 통해서 제2의 중동특수를 주도해가는 리더이지만 그 이면에는 살벌한 권력투쟁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동반자로서 함께 미소 짓고 있지만 사우디로 돌아간 빈살만의 마음 한편에는 늘 긴장감이 가득한 압박감이 그를 옥죄고 있을 듯합니다..

빈살만은 사우디의 왕세자이자 제 7대 총리로 노쇠한 사람 국왕을 대신하여 사우디의 실세이며 재산만 2600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세계적 갑부로 널리 알려진 만수르보다 10배가 더 많은 액수 하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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